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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 암살과 살해의 기록 : 네로

by robot20AA 2024. 1. 22.

네로는 로마 역사에 가장 논란이 많은 장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독재자로의 잔인함을 갖고 있는 인물로 로마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의 한 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어린 시절부터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야심 찬 여성으로, 네로가 황제 칼리굴라의 조카이자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양자가 되도록 조작했습니다. 네로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로마의 황제가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의 뒤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처음에 네로의 통치는 평화롭고 번영했습니다. 그는 예술과 문화를 사랑했으며,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통치 방식은 점점 더 독재적으로 변했습니다. 네로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이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마저 살해했습니다.

 

네로의 통치 기간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64년에 발생한 대로마 화재입니다. 이 화재는 로마의 대부분을 파괴했고, 네로는 이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도들에게 전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네로는 또한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로마에 강요했습니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으며, 종종 대중 앞에서 연주와 연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전통적인 로마 귀족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통치 후반기에는 반란과 내부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68년, 네로는 군대와 상원, 그리고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죽음을 명령받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성격변화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네로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으로 복잡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권력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네로를 황제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 여러 계략을 사용했습니다.

 

 

클라디우스 황제 암살 : 암살자 네로의 어머니, 그리고 클라디우스의 아내 아그리피나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황제의 주치의인 헤르모니아누스를 매수하여 황제에게 치사량의 독을 먹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54년 10월 13일에 사망했습니다.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암살한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설은 황제의 주치의인 헤르모니아누스를 매수하여 독을 먹였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은 황제의 식사에 독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네로가 황제로 즉위했을 때, 그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17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초기에는 그의 어머니와 선생인 세네카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살해했습니다. 아그리피나는 네로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였고, 네로는 그녀를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그리피나 살해 : 암살자 아그리피나의 아들 네로

네로는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먼저, 그녀를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그리피나는 독에 면역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녀를 배에 실어 바다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그리피나는 배에서 탈출했습니다.

 

결국, 네로는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기 위해 그녀의 별장에 불을 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네로는 아그리피나가 별장에 있을 때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아그리피나는 불을 피하고 살아남았습니다.

 

네로는 아그리피나를 끝내기 위해 궁녀들을 시켜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이게 했습니다. 59년 10월 18일, 아그리피나는 궁녀들의 칼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네로의 어머니 살해는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네로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어머니를 살해한 잔인한 폭군으로 비난받았습니다.

 

네로가 아그리피나를 살해한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설은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기 위해 별장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설은 아그리피나가 불을 피하고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은 아그리피나를 궁녀들에게 칼로 찔러 죽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설은 아그리피나의 시신이 칼에 찔린 흔적으로 가득했다는 기록과 일치합니다.

 

네로 황제는 고립과 편집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제거하려 했고,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했습니다. 네로의 고립은 그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네로의 주변을 자신과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채웠습니다.

 

네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언제든지 배신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네로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네로의 편집증은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 애인, 심지어는 자신의 어머니까지 살해했습니다.

 

사건사고 대로마 화재

네로의 대로마 화재는 서기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입니다. 이 화재로 인해 로마 시의 14개 구역 중 7개 구역이 전소되었고, 약 10만 명의 인구가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마에 유행하던 흉흉한 소문에 따르면, 네로 황제가 자신의 궁전인 금궁을 짓기 위해 화재를 지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소문은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화재를 일으켜 도시를 파괴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네로의 주장은 로마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기독교인들은 대대적인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네로의 기독교도 박해는 로마 역사상 가장 잔인한 박해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네로의 기독교도 박해는 매우 잔인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고문과 처형을 당하며 수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기독교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사자들에게 던져지거나, 화형을 당했습니다.

 

네로의 최후

 

68년 6월 8일, 타라콘네시스 속주 총독 갈바가 주도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갈바는 네로의 폭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고, 로마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군대는 갈바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네로는 로마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네로는 로마를 탈출한 후, 마지막까지 그의 편에 있던 해방 노예 파온의 별장에 머물렀습니다. 네로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고, 파온에게 자살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파온은 네로의 부탁을 들어주고, 네로의 목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네로가 죽은 날짜는 68년 6월 8일로, 그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네로의 죽음으로 로마 제국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갈바는 로마 황제로 즉위했지만,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갈바는 69년 1월에 암살당했고, 이후 로마 제국은 1년 동안 4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권력을 잡은 갈바역시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갈바의 독단적인 통치

 

갈바는 즉위 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독단적인 통치를 펼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임명하고, 반대파들을 탄압했습니다. 이러한 갈바의 독단적인 통치는 로마 시민들의 불만을 사게 되었습니다.

 

갈바의 무능한 정치

 

갈바는 정치적으로 매우 무능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통제하지 못했으며, 로마 제국의 재정을 악화시켰습니다. 이러한 갈바의 무능한 정치는 로마 제국의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갈바의 잔인한 처형

 

갈바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처형을 자행했습니다. 그는 네로의 측근들을 모두 처형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인 아우렐리우스 갈바까지 처형했습니다. 이러한 갈바의 잔인한 처형은 로마 시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갈바의 암살은 로마 제국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암살로 인해 로마 제국은 1년 동안 4명의 황제가 교체되는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갈바의 암살을 주도한 사람은 로마 군단의 지휘관 오토였습니다. 오토는 갈바의 독단적인 통치에 반대했으며, 자신의 황제 즉위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오토는 갈바를 암살하고 로마 황제로 즉위했지만, 그의 통치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오토는 69년 4월에 빅터리누스에게 패배하고 암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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